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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슬럼프를 빠르게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평소와 다르게 삐걱대는 모습을 보인다면 가장 먼저 ‘내 양육방법에 문제가 있구나.’ 라고 빨리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시도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아정신과 의사라고 해서 다른 부모와 다르지 않습니다. 마치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라는 속담처럼 양육 방법이나 문제행동에 대한 이론을 잘 안다고 해서 잘 키운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진료실을 찾아오는 부모님들에 대해서는 한발 떨어져 객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조언을 해줄 수 있어도, 정작 저희 아이들에게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적용하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제 경우에도 한참이 지나서야 문제를 인식하였습니다. 그 시간만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고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둘째는 슬럼프의 원인에 대해서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슬럼프의 원인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가 문제를 인식하고 난 이후에는 다양한 각도에서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 때 가장 쉬운 방법은 부모 자신과 아이들과의 반복되는 패턴을 살펴보고 과거에 좋았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전과 다르게 아이들에게 화를 자주 내는 문제가 있다면 최근에 화를 내는 상황에 대해서 체크해보고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슬럼프의 원인이 항상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자녀와의 상호작용 패턴 외에 다른 문제들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건 아닌지 생각해야 합니다. 전날 남편과 싸우고 나서 아이들에게 갑자기 화를 내지는 않았는지? 명절 때문에 심란한 마음에 그냥 넘어갈 일도 평소와 다르게 화를 낸 건 아닌지? 회사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이미 화가 나있는 건 아닌지? 그 밖의 다른 원인들에 대해서도 천천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의 슬럼프의 원인은 이랬습니다. 평소에 아이들을 대할 때 ‘크게 소리지르지 않기’, ‘화 내지 않고 설명하기’ 이렇게 두 가지 원칙을 정해놓고 나름 잘 지킨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아빠인 저는 좀 더 허용적인 편이 되었고, 반대로 부인은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일들을 도맡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점차 어떤 요구가 있을 때 저에게 먼저 요구하게 되었고, 잔소리를 많이 하는 엄마와는 점차 부딪히는 일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소리 지르고 화낼 일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다 보니’ 그런 건데 저는 육아를 잘해서 그런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게 슬럼프의 원인이었습니다.
셋째는 슬럼프를 일으킨 원인을 해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육아 슬럼프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육아에 있어서 자신만의 원칙이 없거나 있더라도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시시때때로 변하는 상황이나 수많은 위기에서 중심을 잃고 당황하게 됩니다. 문제가 생길때마다 임기응변 식으로 대처를 하면 부모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항상 바뀌는 기준이나 원칙에 혼란을 겪게 됩니다.
제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을 때 양쪽 부모는 같은 기준을 가지고 똑같이 대해야 한다.’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아이들의 요구에 대해서 적절히 중립적인 자세를 지키는 부인과는 달리 저는 무조건적으로 수용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아이들은 두 가지 기준에서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예전처럼 똑같은 기준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려고 노력 중이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경우도 줄어들고 집안도 안정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넷째는 스스로에게 칭찬을 하면서 양육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어느 순간에 ‘내가 왜 이러지? 애들 키우기가 이렇게 힘들었나?’ 하는 위기의 순간이 찾아 옵니다. 그런 순간에 중요한 점은 바로 어떻게 빠르게 극복하는지 입니다. 그런 순간에 필요한 것이 ‘양육 자존감’ 입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양육 자존감’ 에 대해서 다룬 적이 있으니 필요하신 분들은 한번씩 읽어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부모의 자존감을 높이는 5가지 방법) 평소에 ‘양육 자존감’ 이 높다면 슬럼프가 찾아오더라도 빠르게 위기를 인정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난 부모로서 자격이 없나? 그러면 그렇지! 난 부족한 부모일 뿐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자책만하다가 슬럼프가 장기화되고 더욱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자신에 대한 칭찬입니다. 스스로에게 ‘이만하면 훌륭한 부모임에 틀림없어.’, ‘누구 도와주는 사람도 없는데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 걸 보면 난 꽤 괜찮은 부모 맞아.’, ‘이대로 하면 앞으로도 잘 해낼 거야.’ 라고 셀프-칭찬을 해주세요.
다섯째는 자신만의 휴식시간을 확보하여 여유를 가지는 게 필요합니다.
부모 자신도 사람이기 때문에 휴식을 통해서 어느 정도 에너지를 충전해야 아이들도 돌볼 수 있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당장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어떻게 여유를 부리느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지만 여유를 가지는 게 오히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항상 고민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뭔가 하나가 해결되면 또 다른 고민이 생기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때는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을 과거 1년전의 고민이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기억이 정확히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그만큼 당시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큰 문제가 아니였음을 알게 됩니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커피를 한잔 마시거나 산책을 하면서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을 하다 보면 급하게 해결하려고 했을 때보다 좀 더 좋은 해결방법을 찾게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스스로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마치 장기판에서 장기를 두는 사람은 보지 못하는 묘수를 훈수 두는 사람은 쉽게 보는 것처럼 말이죠. 또는 ‘이 정도 아이들을 키우면 됐지 뭘 더 어떻게 하지?’ 라고 문제를 인정하지 않거나 축소해서 생각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문제를 알아채거나 인정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최근에는 흔한 일이 됐지만 운동선수들 중에 몇몇 선수들은 슬럼프가 오면 정신과 의사 또는 심리학자를 만나서 상담하면서 문제점을 해결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육아 슬럼프도 마찬가지 입니다. 스스로만의 힘으로는 슬럼프의 원인을 알아내기 힘들 수도 있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히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거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나 슬럼프가 장기화 되어 육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전체에 영향을 주어 자신감을 잃거나 심한 경우에는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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